위례성 백제 초기 왕성 서론 그것은 백제의 초기 수도였다. 위례라는 이름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지만, 왕이 살고 있는 성이나 큰 성을 의미하는 것 같다. 본론 온조와 비류는 고구려에서 분리되어 남쪽으로 이동해 위령도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수도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나는 온조가 하남위례성 남쪽에 나무 울타리를 세우고 온조 13년에 위례성 사람들을 옮겼다는 것이다. 이전 기록에 따르면 위례성은 처음부터 한강 이남에 있었으나 그 뒤의 기록을 보면 한강 이북에 있다가 한강 이남으로 이동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경우 이동 전 위례성을 하북위례성이라고 하고, 이동 후 위례성을 하남위례성이라고 한다. 백제가 처음부터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하남 위례성..
한양 조선의 도읍지 서론 조선의 수도다. 강과 평원에 인접해 있고 교통이 개선되어 예로부터 중요한 도시로 발전되어 왔다. 백제는 이곳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으며, 고려시대에는 ‘남경’이라는 궁궐을 지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로 불린다. 본론 한양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한양 지역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된 것은 기원전 40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한양은 한강이 흐르고 김포평야가 닿아 있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으며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를 포함한 모든 왕국은 삼국시대부터 한양으로 싸웠다. 백제는 한양을 가장 먼저 점령한 나라였다. 백제는 한양을 수도로 삼아 나라의..
성균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국립대학 서론 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최고의 국가교육기관이다. 오늘날의 국립대학과 비슷하다. 유교의 경전, 역사, 문학 등 수준 높은 교육이 발달해 앞으로 관리될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본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시골에 학교를 짓고 운영하는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이다. 고구려의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 등은 역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성균관은 고려 충선왕 때인 1308년 국자감(國子監)으로 개칭되어 조선 시대 한양에 계속 건립되었다. 성균관은 크게 두 가지 일을 했다. 첫째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사당 대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둘째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은 200여 명이었고, 첫 번째 과거시험인 과에 합격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