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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조선시대의 초등교육기관

마침표를 찍자 2019. 12. 30. 23:22

서당 조선시대의 초등교육기관




서론


조선시대 초등교육을 담당했던 사립학교다. 오늘날의 초등학교와 비슷하지만 규모가 훨씬 작아서 주로 유학에 기반을 둔 한문 교육이 있었다.





본론


초등 교육 기관은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고구려 시대에는 이미 '경당'이라는 교육기관이 있었고, 마을마다 고려시대에는 서당과 비슷한 학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유학의 중요성이 높아져 전국 각지에 서당이 생겨났다.


서당은 시골에 세운 지방공립학교인 향교나 살림이 세운 서원 등 일정한 조건이나 규정이 없어 자유롭게 지어지고 철거되었다. 


어떤 마을에 교사가 끌려오고 유교자가 지역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도서관을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아이들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고, 타락한 귀족들도 많아져 생계를 위해 서당이 많이 세워졌다. 


부모들은 봄과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 서당의 스승인 훈장에게 학비를 지불했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수, 나이, 학업 수준도 각각 달랐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7~16세 학생이 가장 많았다. 


학습내용은 주로 천작문을 통해 한자 음과 뜻을 익힌 뒤 짧은 문장을 외우고, 명심보감, 격몽요결을 통해 도덕적인 내용을 익히는 것이었다.


한 권의 교과서를 외우고 이해하자 훈장을 고맙게 여기고 떡과 음식을 준비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갔다. 



'십팔사략' '자치통감' 등의 역사책을 읽고 본격적으로 '소학'을 통해 유학의 기본을 공부한 뒤 유교 경전 '사서삼경'으로 넘어갔다. 



이 무렵에는 서당을 벗어나 향교나 서원, 또는 과거를 거쳐 성균관까지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서당은 서양식 근대학교가 설립된 후 꽤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지만, 지금은 그 위신이 거의 사그라졌다.




결론


서당의 교수법은 주로 독서와 암기, 회답법이었다. 


학생들은 글자와 뜻을 배울 때까지 읽기와 암기를 반복했고, 유교 경전을 배우는 과정에서 훈장과 학생들이 문답을 주고받았다. 



한 권의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익혀야 다음 한 권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비록 함께 시작했더라도 개인의 학습은 그 진전에 따라 다른 진전을 이루기 위해 행해졌다. 



학습한 것은 매일 평가하여 정기적으로 시험하였다(5, 10일 또는 1개월). 


시험 성적은 보통 5등급으로 나뉘었지만 최하등급은 불합격돼 재수강을 해야 했다. 


반면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종이와 음식 등의 제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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